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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친구의 종류

스마일가족 2020. 6. 28. 10:36

어떠한 친구라도 한 명쯤 곁에 두고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합니다.

 

수어지교(水漁之交) :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뗄 수 없는 친구

《삼국지》 <제갈량전(諸葛亮傳)>을 보면 유비와 제갈량이 갈수록 가까워져서 관우와 장비가 이에 불평을 하자,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나에게 제갈공명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라.”라고 타일렀다고 합니다.

 

금석지교(金石之交) : 둘 사이가 단단한 무쇠를 자를 능력이 있는 견고한 친구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에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니 그 예리함이 쇠덩이(金石)를 자를 수 있고,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蘭)와 같다”이라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금란지교(金蘭之交), 단금지계(斷金之契), 금석지계, 단금지교 등 여러 가지로 쓰입니다..

 

막역지교(莫逆之交) : 참된 도(道)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친구

《장자(莊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어느 날 네 친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벗이 되고 싶다고 하니, “四人 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라고 나옵니다. 본래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모두 말합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허물이 없는 친구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의하면 중국 제(齊)나라에서, 포숙(鮑叔)은 자본을 대고 관중(管仲)은 경영을 담당하여 동업하였으나, 관중이 이익금을 혼자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포숙은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탓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하였고, 함께 전쟁에 나아가서는 관중이 3번이나 도망을 하였는데도 포숙은 그를 비겁자라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그를 위해 변명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포숙은 관중을 끝까지 믿어 그를 밀어 주어 관중이 제나라의 명재상이 되게 하였고, 관중도 일찍이 포숙을 가리켜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 뿐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문경지우(刎頸之友) : 목숨 걸고 맺은 신의(信義)의 친구 (刎頸=목을 베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명신 인상여(相如)염파(廉頗) 장군은 한때 인상여의 출세를 시기하는 염파로 인하여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한 염파가 깨끗이 사과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되었고,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죽마고우(竹馬故友) : 어린 시절 함께 자라고 비밀이 없을 정도로 가장 절친한 친구

동진(東晉)의 환온(桓溫)과 은호(殷浩)가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대나무로 말을 만들어 함께 타고 다녔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데, 황제의 꿈을 가지고 있던 환온이 황제가 견제를 하기 위해 등용한 은호와의 결말은 좀 안 좋았는데, 둘 사이가 나중에 나빠져서 은호가 전쟁에서 지고 실각하여 귀양을 떠나는 날 환온이 측근들을 모아 옛날을 회상하며 “나와 은호는 어린 시절 죽마를 타고 놀던 친한 친구였다. 은호는 내가 타다 버린 죽마를 주워서 타곤 했지만, 아무튼 은호의 실각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나중에 편지를 잘못 썼다고 죽였음) 조금은 상대를 아래로 보고 한 말이라서 죽마고우가 좋은 친구라기 보다는 한 때 같이 놀던 친구 정도였지만, 요즘은 오래된 친한 친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간담상조(肝膽相照) : 서로 마음을 터놓는 친밀한 친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2 명인 당나라 한유(韓愈)와 그의 친구 유종원(宗元) 사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유종원은 벼슬에서 좌천되었지만 자기보다 처지가 어려운 친구를 더 위로하는 말을 한 것에 감복하여 유종원이 죽은 후에 한유가 그의 묘지명을 쓰면서 「~~~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곧 간담상조가 상호 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을 나타내거나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를 일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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